참여/소식

국유정담

[2025 봄, 여름호-수사반장]조선의 형사 절차
일반적으로 형사 절차라고 하면, 수사기관이 스스로 범죄를 인지하거나 고소·고발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에서 기소를 결정하면 법원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심리하여 유죄인지 무죄인지, 유죄라면 어느 형벌을 얼마나 부과할지를 선고하는 과정이다. 확 줄여서 말하자면, 수사로써 밝혀진 범죄를 처벌하는 절차로 보는 것이다. 이런 점은 조선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다만 시대의 차이가 있는 만큼 다른 기관과 제도로써 진행되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재판이라고 하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고 호령하는 사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형사소송의 모습이 기본적으로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민사소송은 없거나 있었어도 형사 절차처럼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놀랍게 조선에서는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개념적으로도, 제도로도, 실무에서도 뚜렷이 구분되어 저마다의 절차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 관념이 형성된 데에는 지방의 관아에서 행정, 수사, 형사소송, 민사소송을 다 맡아서 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한 법원에서 민사소송, 형사소송, 행정소송 등을 모두 관장하고, 법관들도 이 업무들을 두루 돌아가면서 맡게 된다.
2025년 08월 호
[2025 봄, 여름호-수사반장]조선시대의 풍기 단속
현대 사회에서도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행위들을 금지하는 규정을 제정하고, 위반할 경우에는 이를 단속하고 처벌한다. 고성방가 등 인근을 소란스럽게 한 행위, 술주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과다한 노출 등에 대한 규제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0년대 건전한 사회 기풍을 정착시킨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은 당시 권위주의 시대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희대의 촌극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단속 규정들이 있었다. 『경국대전』 「형전」 금제(禁制)조에는 사족(士族) 부녀(양반층 여성)로 산간이나 물가에서 잔치를 벌이거나 야제(野祭), 산천, 성황, 사묘제(祠廟祭)를 친히 행한 경우 장 100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현재 관점에서는 야외에서 잔치를 벌이거나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지배층들은 야외 행사에서 남녀가 섞이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들은 이를 남녀의 분별이 무너져 풍속을 크게 해치는 일로 인식했던 것이다.
2025년 08월 호
[2025 봄, 여름호-수사반장]한양의 도적, 우리가 잡는다 -조선시대 경찰 포도청-
절도는 인간의 약탈 본능을 억제하지 못해 표출된 반사회적 행위였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포스에서 신들의 불을 몰래 훔친 이야기부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 노비로 삼는다”는 고조선의 팔조법금에 이르기까지, 도적과 그에 대한 규제는 인류 역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조선시대 포도청(捕盜廳)은 도성을 중심으로 포도(捕盜, 도적 체포)와 순작(巡綽, 야간 순찰)을 주요 업무로 수행하기 위해 창설된 치안 전담 기구였다. 당시 동서양을 통틀어 도적을 단속하는 전문기구가 설치된 사례는 조선의 포도청이 유일하였다. 포도청은 치안 기구로서 명실상부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그 결과 조선 후기 직수아문(直囚衙門)의 지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포도청은 도성민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말단 기관이었기에 그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400여 년간 도성의 치안을 담당해 온 포도청은 19세기 들어 지나치게 권위적인 공권력으로 변질되었다. 공공기관이 시민들의 신뢰를 잃고 외면받게 되면, 그 존재 가치는 결국 부정될 수밖에 없다. 1894년 포도청은 서구식 근대적 경찰 조직인 경무청으로 개편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5년 08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