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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의 유래와 변천
옛 속담에 “썰매는 여름에 장만하고, 달구지는 겨울에 장만 한다”는 말이 있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썰매 가 농사철 소달구지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엿보게 한다.
썰매는 한자어 ‘설마(雪馬)’에서 나왔다. 설마란 ‘눈 위 를 달리는 말’을 뜻한다. 『훈몽자회』(1527)에 설(雪)은 ‘눈 셜’로 적혀 있다. 설마(雪馬)가 처음에는 ‘셜마’로 쓰였음을 보여준다. 셜마는 『광재물보』(18세기 말)까지 그대로 쓰이 다가, 19세기 이후 ‘썰매’로 바뀌었다. 그 사실은 『조선어사 전』(1920)에 셜마(雪馬)가 “썰매와 같다”고 쓴 것에서 확인 된다.
썰매의 유래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칸디나 비아반도와 알타이 지역에서는 썰매 또는 스키를 타고 사 냥하는 암각화가 발견됐다. 썰매가 수렵과 이동 수단으로 시작된 것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대의 썰매에 관 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발해의 교통로에 여러 곳의 구참(狗站)이 있었 다. 구참은 역참처럼 구차(狗車), 즉 개썰매를 갈아타는 곳 이다. 흑룡강이 9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얼자 배 대신 강 가에 수구참(水狗站)을 두어 개썰매를 이용했다. 발해의 멸망으로 개썰매는 한국문화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썰매에 대한 첫 기록은 조선시대에 나타난다. 1435 년(세종 17)에 함길도 길주 이북의 회령·경원 등지에 눈 이 많이 와 길이 막히자 설마(雪馬) 타는 자로 하여금 곡 식을 운반케 하여 백성과 우마(牛馬)를 구제한 기록이 그 것이다. 폭설이 내린 회령과 온성 등지는 한 해 전인 1434 년(세종 16)에 김종서가 6진(鎭)을 설치한 지역이었다. 썰 매의 기록은 15세기 중엽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성 현(1439~1504)이 쓴 『허백당집』에는 북경 사신을 가면서 대동강의 설마(雪馬)를 언급한 시가 보인다. 퇴계 이황도 단양의 언 강에서 설마(雪馬) 타기를 좋아한 제자 황준량 에 대한 글을 남겼다. 특히 계곡 장유(1587~1638)는 한강 의 동작나루에서 썰매를 타고 노량까지 오면서 흥취를 노 래했다. 영조 때 정승을 지낸 조태억(1675~1728)도 한강 의 동작나루에서 설마(雪馬)를 타고 가면서, 목마(木馬)가 역참보다 빠르다고 전했다. 썰매는 이렇듯 겨울철이면 배 를 대신한 빙판의 교통수단이었다. 그러자 전국의 강나루 에는 겨울철에 관선(官船) 나룻배를 대신할 썰매가 배치 됐던 것으로 짐작된다. 1832년 동지사(冬至使)로 갔던 김 경선은 북경의 영대에서 빙희연(氷戱宴)을 구경한다. 그 는 “시위 친군이 얼음 위에 모여 기창북피리를 가지고 나아가다 물러서며 치고 찌르는 시늉을 하고 각각 기예를 발 휘하면 상을 내리는데, 이것이 이른바 빙희다”라고 소개했 다. 빙희는 다름 아니라 스케이트를 타고 행하는 빙상곡예 로, 만주족인 청나라 군사들이 받던 군사훈련의 일환이었 다. 하지만 조선은 청나라의 빙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빙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 개항 이후였다. 1894년 경복궁 향원정에서 ‘빙족희(氷足戱)’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인 스케이트는 1900년대 이후 보급됐다. 스키는 1921년에 전해지기 시작해 1926년 원산의 신풍리 스키장 이 세워지면서 본격화됐다. 썰매 종목의 도입은 최근의 일이다. 1989년 루지(누워 타기)연맹이 결성되면서 봅슬레이 (앉아 타기) 스켈레톤(엎드려 타기)과 함께 보급되기 시작 했다.
썰매의 종류와 놀이
썰매의 종류는 크게 신발에 메고 타는 썰매, 널판자를 타는 썰매, 짐을 실어 나르는 썰매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신발에 메고 타는 썰매는 산간지역에서 타는 스키 의 형태다. 일명 ‘신발썰매’다. 썰매의 크기는 일정치 않으나 대략 1m 정도로 지금 스키보다 짧았다. 썰매를 타고 산간의 나무 사이를 달리기 위해서다. 썰매 판에 4개의 구멍이 있어 끈으로 신발을 고정시켰다. 썰매의 방향과 속도는 막대로 조 절했는데, 현재 스키와 달리 하나의 지팡이(Ski pole)를 사용 했다. 신발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야 하는데, 이때 신는 신발이 설피였다. 오늘날 리프트를 대신하는 셈이다.
둘째, 널판자를 타는 썰매는 얼음판 위에서 타는 형태 다. 일명 ‘판자썰매’다. 처음에는 썰매를 배처럼 만들어 사람 이 끌었다. 그러다가 근대에 오면서 판자 형태로 바뀌었다. 판자의 밑에 대나무 또는 철사나 쇠붙이를 박아 만들었다. 날 하나를 세우는 것을 외날썰매, 두 날을 세우는 것을 양날썰매 라고 했다. 양날썰매를 앉아 탔다면 외날썰매는 서서 탔다.
셋째, 짐을 싣는 썰매는 용도와 기능에 따라 종류가 많 았다. 일명 ‘짐썰매’다. 주로 돌을 나를 때 쓰는 설마(雪馬)가 있는가 하면, 소가 끄는 쟁기와 같은 파리(把犂)와 땔나무를 싣는 썰매도 있었다.

썰매 타고 사냥하기
신발 썰매는 눈이 쌓인 산간지역에서 이동뿐 아니라 중요한 사냥 수단이었다. 그 사실은 다음의 기록에서 잘 확인된다.
우리나라 북쪽 변방에는 겨울철이 되면, 사냥에 설마(雪馬) 를 이용한다. 산골짜기에 눈이 두껍게 쌓이기를 기다려서 한 이틀 지난 후면 나무로 말을 만드는데, 두 앞머리는 위로 치 켜들게 한다. 그 밑바닥에 기름을 칠한 다음 사람이 올라타고 높은 데에서 아래로 달리면 그 빠르기가 날아가는 것 같다. 곰과 호랑이 따위를 만나기만 하면 모조리 찔러 잡게 되니, 이는 대개 기계 중에 빠르고 이로운 것이다.
북쪽 지방에서는 겨울철에 사냥꾼이 썰매를 이용해 사 냥했다. 썰매 타고 사냥하는 사람을 ‘썰매꾼’이라고 했다. 산 정상에서 3~5명이 함께 내려 달리면서 곰이나 호랑이를 만 나면 창을 던져 찔러 잡는 형식이었다. 눈이 쌓인 곳에서 곰 이나 호랑이가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썰매의 지팡이를 하나로 하되, 창(槍)을 겸해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썰매꾼을 ‘창군(槍軍)’ 또는 ‘창수군(槍 手軍)’이라고도 했다.
산비탈 썰매 타기, 썰매 쏘기
썰매는 평지뿐 아니라 경사진 산비탈이나 언덕 비탈에서도 탔다. 눈이 쌓이는 날이면, 비탈진 곳은 아이들이 찾아와 금 세 썰매장이 된다. 비탈에서 썰매 타기는 크게 3가지가 있었 다. 첫째, 앉아 타기다. 아이들이 가장 흔하게 타는 방식이다. 내리막에서 저절로 미끄러져 꼬챙이가 필요치 않았다. 비탈 의 경사가 가파르거나 속도가 빠르면, 썰매가 뒤집어지거나 넘어지기 일쑤였다. 여럿이 타고 가장 빨리 내려오는 쪽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봅슬레이와 유사한 놀이였다. 둘 째, 엎드려 타기다. 썰매를 밀며 달리다가 뛰어오르며 타서 가장 멀리 나가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다. 이를 ‘썰매쏘기’ 라고 불렀다. 위험하여 썰매를 잘 타는 아이들이 노는 방식 인데, 스켈레톤과 유사한 놀이였다. 셋째, 누워 타기다. 이때 누워 타면서도 얼굴은 약간 들고 타야 했다. 앞을 보고 발로 방향을 잡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루지 종목과 비슷하다.
빙판 위의 장치기
눈이나 얼음 위에서 즐기는 놀이에는 썰매 외에도 장치기가 있었다. 일명 장구 또는 얼레공치기, 짱치기 등으로 불리는 막대기로 공을 치는 놀이다. 놀이법은 두 편으로 나누어 가 운데로부터 같은 거리에 위치한 곳에 각기 집(골문)을 정한 다. 각자 앞이 구부러진 막대기를 가지고 직접 만든 나무 공 을 쳐서 상대방의 집(골문)에 먼저 넣으면 이긴다. 오늘날 아이스하키와 유사한 방식이다. 다만 스케이트를 타지 않고 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겨울에 얼 음 위에서 이 놀이를 즐겼다. 평창, 영월, 인제 등이 대표적 인 지역들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옛 겨울스포츠 가운 데는 빙상·스키·썰매 종목과 관련한 흥미로운 놀이가 여 럿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썰매 타고 창 던지기, 비탈에서 썰매 타기의 3가지 방식, 빙판 위의 장치기 등은 오늘날에 스키의 바이애슬론, 썰매의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아이스하키와 유사한 측 면이 엿보인다. 눈이나 얼음 위에서 놀려는 놀이 심성과 사 냥 습속이 이같이 유사한 놀이형태를 가능케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