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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장 ‘이봉주’ 편 (2) - 칠전팔기, 방짜 원대장이 가는 길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1168
이봉주 육성 // “사람은 자존심이 아무리 강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당하게 되면 못 할 게 없어요. 내가 본래 용감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당하게 되면 뭐든 하게 된다는 얘기를 말하는 거에요. 사람은 평생 살면서 ‘나는 안돼’, 나는 안 되는 거 없어요. 뭐든지 나는 할 수 있어요. 뭐든지요. 그래야 “나는 벌판에 갖다 놔도, 산에 갖다 놔도, 강에 갖다 놔도 먹고 살 자신이 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유기장, ‘이 봉 주’.
제2화, 칠전팔기 ‘방짜 원대장’이 가는 길.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군수공장 취직 실패->상급학교 진학 실패->군사훈련->광산일>
#1. 1940년대 초반, 평안북도 정주, 이봉주의 집

(새벽 닭 울음 소리)
(겨울 눈길, 터덜터덜 봉주가 걷는 소리)

봉주(봉빈) // (힘 없게) 어머니! (크게 불러보는) 어머니!
어머니 // (황급히 나가며 놀라서) 여보, 봉빈이가 왔나 봐요?
봉주(봉빈) // (쓰러지기 직전 힘 없이) 어머니! (정신 잃고 쓰러지는)

(봉주,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
어머니 // (놀라서 일으키며) 봉빈아, 정신 차리라!
아버지 // (걱정스럽게) 봉빈아! 이놈아!


청년 봉주 // 1942년 12월, 열네 살 때,
군수공장으로 취직하러 떠난 지 3일만의 일이었습네다.
“키가 너무 작아서 안 된다”는 한 마디에 사정 한 번 못해보고,
그 추운 눈길을 밤새 걸어 다시 집으로 왔드랬지요.

어머니 // 봉빈아, 이젠 니 멋대로 집 나가지 말라. 잘 왔다!

청년 봉주 // ‘봉주’가 아닌 ‘봉빈’이란 이름으로 살았던 그땐,
뭘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네다.
기케도, 진취적인 아버지 덕분에 뭐라도 해볼 수 있었고,
저도 아버질 닮아갔드랬죠.


아버지 // (차분히) 봉빈아, 너 공부로 뭘 해볼래면 고등학교 보내주마!
어머니 // 그래요. 소학교 졸업하고선 여기저기 취직하려고 저러는데,
부모된 도리로 제때 공부는 시켜야지요.
아버지 // 공업학교는 시험쳐야 하니 과외로 준비해 보라!

이봉주 육성 // “그때는 과외 공부해서 입학할만할 실력은 키웠는데, 그것도 운이에요. 시험을 치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쉬우니까 시간이 30분이라고 하게 되면 한 10분 내에 답을 다 써버리고 딴 생각하고 있다 시험지를 딱 낼려고 보니까 전부 다 틀리게 써놨더라고. 그래서 실패했어요. 그때 과외공부를 네 사람인가 다섯 사람인가 했는데 다 실패했어요. 그것도 그래서 내가 학교 대회 나가서 ‘실패해도 그거 후회하지 말라’ 그렇게 내가 가르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거든요.”


어머니 // (속상해서) 여보, 소학교 졸업하고 상급학교도 못 가면
4년 동안 일제 군사훈련을 해야한다제요?
아버지 // (한숨 쉬며) 아마 훈련 후엔 전쟁터로 끌고 갈 거라.
어머니 // 아휴....

이봉주 육성 // “그러니까 징병 나이(23살) 위는 징용으로 끌려가고, 그 징병 나이 밑은 정신대에요. 근데 이제 그때 우리 형님은 예비생인가 돼가지고 군대 나이 직전에 해방됐고 나는 이제 정신대 끌려, 상급 학교 간 사람들은 안 끌려갔는데, 상급학교 못 간 사람은 정신대로 갔다고요. 그래서 나는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문례광산이라고 아연 광산이 있었어요. 거기 우리 아버지 친구가 있어가지고 그 일본 사람들이 하는 광산에 취업하게 되면 그걸 면제받았어요, 제가.”


<해방 -> 아버지 // 의 죽음>
#2. 1946년, 평안북도 정주

(대한민국만세 소리 등등)

청년 봉주 // 해방되고 나서 좋을 줄만 알았드랬는데,
이북선 토지 개혁으로 혼란이 왔습네다.

동네 아저씨 // 그거 아네? 봉빈이넨 조상 땅을 다 빼앗겼대.
동네 아줌마 // 점잖고 선한 양반이 안 됐습네다.
동네 아저씨 // 그나저나 인민위원회에서 쌀을 사간다는데 믿을 수가 없다.

청년 봉주 // 걱정은 현실이 됐드랬죠.
흉년이 든 데다 애써 농사지은 쌀마저 헐값에 거둬가자
농민들의 불만이 커져만 갔습네다.
그러던 1946년 8월,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모아
북한 정권에 항거하는 거사를 준비했고, 그 하루 전이었지요.

(군용 트럭이 거칠게 멈춰 서는 소리)
경찰 // (거칠게 소리치는) 이정현! 이 반동분자 간나새끼, 어딨나?
날래 나오라우!


청년 봉주 // 잽혀간 지 40여 일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그해 12월,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네다.

이봉주 육성 //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에 참여했다고 하는 것만 하더라도 요시찰이 인물이 될 상황이야.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보통 반동이 아닌데, 그 세계에서는. 거기 장례식에 참여한 것만 해도 표적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우리 집에서 장지까지 만사가 못 지나갔어. 그마만큼 광범위하게 조문하는 사람이 많이 왔더랬어요.”


< 1부 후반부에서 이어져 다시 1948년 서울로 >

<유기공장 취직>
#3. 1948년, 탁창여 // 방주의 집

(유기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봉주(봉빈) // 여기까지가 서울 오기 전, 평안도서 겪었던 일입네다.
기카고 하나 있는 딸 아인 얼마 전에 폐렴으로 잃었드랬지요.
탁창여 // 1929년생이면 이제 겨우 스물인데, 그런 아픔이 있었구만.
사모님 // 우리 조카 익찬인 무사하겠지? 언제 데려올 거가?
봉주(봉빈) // 그 사람이 윗사람 말이라면 절대 순종이니
시어머니만 두곤 못 오지요. 어서 돈 벌어서 데려와야지요.
탁창여 // 내일부터 나 따라다니며
유기공장 운영하는 거 배우는 게 어떻겠나?
내가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

<원대장이 되기로 결심하다>
#4. 1949년, 서울양대공장, 사무실

(놋그릇들을 지게에 지고 걷는 소리)
청년 봉주 // 처음에는 후암동에서 종로로 유기그릇을 지게로 지고
댕겼어요. 이밖에 탁창여 방주의 잔심부름을 하는 게 제 일이었습네다.
유기공장에 취직한 것이 뿌듯하고 좋아서 아주 열심히 했드랬지요.7787

탁창여 // 자네 산수할 줄 알지?
봉주(봉빈) // 아, 예.
탁창여 // 그럼 인건비 계산도 해보라.
원대장 100원이면 그 밑에 앞망치, 가질대장 같은 중돌이는 50원이고,
안풍구, 밖풍구, 맨 밑에 아랫돌이들은 10원이야.
11명이 한 팀이니 역할대로 잘 맞춰 주게.
봉주(봉빈) // (처음 알았다는 듯) 예. 아, 원대장이 맨아래의 10배나 받네요.
탁창여 // 그렇지. 우두머리니까.
그리고 이제... 나 대신 수금도 다녀라!
자네가 우직하고 정직해서 맘에 든다!
봉주(봉빈) // (좋아서) 네, 탁 방주님! 고맙습네다!


청년 봉주 // 하고 싶은 건 뭐든 해야만 하는 성격인데,
그때부터 전 꿈이 생겼드랬지요.

봉주(봉빈) // (속말) 하루 품삯 기껏해야 쌀 2되 받는데
원대장은 쌀 2가마니를 벌 수 있다 이기야.
그러니 어떡허든 나도 방짜기술을 배워서 원대장이 되고 말갔어!


봉주(봉빈) // 탁 방주님, 저도 방짜기술을 배우고 싶습네다.
탁창여 // 자네 같은 사람이 쌍놈들 하는 일을 뭘 배우겠나?
봉주(봉빈) 직업에 귀천이 있습네까? 전 따로 배운 것도 없습네다.
탁창여 // 자네가 장사하겠다면 도와주겠지만 아예 배울 거면 하지 마!
봉주(봉빈) (간청) 제가 좀 배워 노면 안 되겠습네까?
탁창여 // (마지못해 허락) 거참... 정 하겠다면 우선 배워 노라!

청년 봉주 // 사실 탁 방주님은 제가 방짜기술 배우는 걸
내심 바라셨던 것 같아요.


탁창여 // 봉빈아, 잘 들어라! 주물로 찍어내는 유기는
장인과 보조 한 명만 있어도 할 수 있지만
오로지 수제로만 허는 방짜는 열한 명이 한 조가 되니,
장인 하나를 키워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우두머리인 원대장은 제작 과정을 다 알아야 하지.
그러려면 누군가 옆에서 불도 피워주고 달궈주고 붙잡아주고
때려도 주고 해야 하니 혼자 익힐 수가 없단 말야.
게다가 불 피우는 숯값, 연습하다 나온 불량품은
나 같은 방주가 다 감당해야 하지.
봉주(봉빈) // 그래서 ‘원대장 하나 만들기 위해 주인 하나 망한다’는 말이
있는가 봅네다.
탁창여 // 고럼. 내 너를 밀어줄 테니 힘껏 해보라!


<탁방주의 지지와 이봉주의 뚝심으로 원대장이 되다>
#5. 1949년, 서울양대공장

(유기 공장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
(놋덩어리 메질하는 소리, 놋그릇 소리)
원대장 // 봉빈이 자네는 오늘도 퇴근 안 하나?
봉주(봉빈) // 네, 원대장님. 낮에 등 너머로 익힌 걸 혼자 해보려고 합네다.
원대장 // 요즘 수군대는 얘기가 좀 있다. 그건 좀 알고 잘 배우라.


이봉주 육성 // “정말 안타깝고 그 당시 고통스러운 심정은 표현을 지금도 다 못하는 게 이건데 또 고비가 또 있어요. 이래 조면 이렇게 찌글찌글 구멍 나게 되면 다시 녹여서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러면 겟대장 녹이는 사람은 월급이 아니고 대야 몇 근 나왔는가에 대해서 한 달에 한 번 계산을 하거든요. 쇠 잘 녹여서 하면 돈 이달에 예를 들어서 100만 원 받으려고 했는데 이봉주는 배우면서 불량나가지고 70만 원, 80만 원밖에 못 받아 가게 되는 거야. 그러면 그 눈초리가 어디로 가겠어요. 나한테 올 것 아니에요? 그래도 그 사람이 날 내쫓지 못한 건 내가 탁 방주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니까 나한테 반항을 못 하고 지내는 거예요.”


(유기 공장 소리- 놋덩어리 열에 달궈 식히는 소리)
봉주(봉빈) // 겟대장님, 퇴근 하십네까?
겟대장 // 그래. 자네도 이젠 좀 나아졌다야!
구멍이 안 나니 다시 녹일 필욘 없갔어.
봉주(봉빈) // 덕분입네다. 근데 모양이 별루지요?
높고 낮고 어드렌 건 찌글찌글하고, 아직도 멀었습네다.
탁창여 // (저기서 다가오며 큰 소리로) 괜찮으니 다들 원 없이 만들어보게!
누구든 뭘 만들어도 내가 다 팔아치울 테니 걱정 말라!
내 식군 내가 책임진다!
겟대장 // 탁 방주님, 이번에 명절 선물 잘 받았습네다.
그 귀한 소갈빌 주셔서 식구 모두 입 호강했시오.


이봉주 육성 // “탁 방주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죠. 자기네 식솔을 전부 다 먹여 살리는 분이니까.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나를 낳아주고 나를 키워 준 거는 우리 낳아준 우리 친부모가 우리 부모고, 나를 뼈가 굵게 하고 내 사상 정신은 탁창여 씨 그분이 나를 지도해줬어요. 내 평생 사는 게 그 방식을 많이 따라서 살아요. 나에게는 은인 중의 은인이죠.”

봉주(봉빈) // (속말) 아, 더 잘 만들어서 원대장도 되고
탁 방주님 은혜도 갚아야 하는데...
내가 만든 건 자꾸 쌓여만 가는구나야.


청년 봉주 // 그런데 주저앉기만 하란 법은 없나 봅네다.
전화위복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지요.

(공장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최동길(고객) // 내 황해도 연안 사는 최동길이오.
저기 구석에 쌓여있는 양대가 더 싸다니 저거 다 주시오.
장사꾼은 이윤이 나야 계속 팔지요.

이봉주 육성 // “최동길이라는 사람이 찌그러진 거 자꾸 사가니까, 내가 해도 되니 이렇게 되니 이렇게 되면 계속하니까 일이 빨리 숙달되잖아요. 그런데 하루는 왜 그런지 모르갔어. 원대장이 그만뒀어. 나 이제 하루아침에 원대장이 됐어. 원대장이 돼서 그 시간은 기술 배우고 18개월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데 이때까지 풀무질부터 해서 18개월에 원대장이 된 것은 기록에 없어요. 이 원대장이란 건 하늘이 내리는 거지.”

<6.25 전쟁- 대구로, 다시 제주로>
#6. 1950년, 서울 양대공장

(6.25 전쟁– 포격 소리, 한강 다리 무너지는 소리)

청년 봉주 // 원대장이 된 지 얼마 뒤 6.25 전쟁이 일어났습네다.
한강 다리가 끊겼다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져내렸지요.
고향의 가족을 못 볼까, 잘 있을까 걱정이 됐습네다.
하지만 그 위기에서도 탁 방주는 타고난 사업가였어요.

(자전거 끌고 오는 소리)
봉주(봉빈) // 자전거 끌고 어디 가시게요?
탁창여 // 식구들 먹을 쌀이 없네.
집으로 옮겨논 놋그릇들을 가지고 나랑 같이 쌀 사러 가세.
자전거 탈 줄 알지?
봉주(봉빈) // 그럼요.
탁창여 // 자네는 젊으니 혹시 검문을 당하면 말을 아예 하지 마.
장애가 있다고 하면 군대로 끌고 가진 않겠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
봉주(봉빈) // 네. 믿고 암말도 허지 않겠습네다.

(놋그릇 싣고 자전거 타고 가는 소리)
청년 봉주 // 김포, 일산, 개성까지 가서 놋그릇을 팔아 쌀을 사왔고,
서울 수복이 되자 탁 방주는 종로에 유기 가게를 열었지요.
하지만 이내 중공군이 밀려와 불안하던 어느 날,
고향 친구가 찾아왔습네다.

(유기가게 문 급하게 여는 소리)
봉주(봉빈) // (놀라서) 아니 병규, 자네가 웬일인가? 군에 있어야 하지 않나?
강병규 // (급하게) 그러니 내 형하고 조카 데리고
대구까지만 피난 좀 같이 가주게. 지금 바로 출발해야 허네.

(기차역- 출발하는 소리)
청년 봉주 // 그 길로 전 기차 지붕에 타고 대구까지 갔지요.
거기선 과자 장사를, 이후 제주까지 가선
뻥튀기와 엿 장사를 하며 피난살일 했습네다.
그러나 한순간도 방짜 원대장의 길을 잊은 적은 없었지요.

봉주(봉빈) // (속말) 나는 방짜 유기를 만드는 원대장이다!
전쟁이 끝나면 숯을 피우고 쇠를 녹이고 메질을 해서
세계 제일 가는 방짜를 만들갔어!


< 마무리 코너 –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방짜 좌종 쳐서 울리는 소리)
나레이션 // 여러분은 지금 이봉주 유기장의 만든 방짜 좌종을 직접 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이 좌종으로 이봉주 유기장은 198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고, 2005년 해인사 음악법회에서는 좌종이 악기로 쓰였습니다. 2014년에는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회에 17개의 좌종을 출품해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봉주 유기장의 장남이자 대를 이어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형근 유기장으로부터 방짜 유기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이형근 // 쇠를 구리하고 주석을 도가니에 넣어가지고 펄펄 끓이면 1,300도 이상 올리면 그게 녹아요. 1,300 이상 녹여가지고 그거를 판판한 틀에다가 쇳물을 부으면 표면장력 때문에 또르르해져서 응집돼서 바둑알마냥 생겨요. 그래서 내가 만드는 기물이 1kg짜리다 하면 1kg만하게 바둑알 만들고, 50kg라고 하면 50kg만 한 바둑알을 만들어가지고서 이제 그거를 열반 가공을 해야지만 이게 쇠가 늘어나거든요. 쇠가 워낙 경도가 높아가지고서 충격을 주면 깨지는데 달군 상태에서는 경도가 취성, 경도 이런 게 다 내려가져서 물렁물렁해져가지고 인장강도가 거의 스테인레스보다 더 낮다나봐. 그래서 뻘겋게 달군 상태에서 메로 쳐서 늘어나는 거고.
그런데 그 가공 온도 시간이 한 500개에서 800도 사이, 그 사이에서만 가공할 수 있어요. 800도 넘어가면 쇠가 터져버리고 500도 미만으로 떨어지면 쇠가 깨져버려요. 그런데 그 온도 조절을 잘해가지고서 그 시간에만 열심히 두들겨야 돼. 식기 전에 막 두들겨야 되니까 굉장히 바삐 망치질을 해야 되겄죠.

나레이션 // 달구어진 놋쇠를 매질할 때는 온도와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협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이렇게 방짜유기는 섭씨 1300도의 용해로를 오가며 수천 번 두드리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유기장, 이 봉 주. 두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하성용, 전해리, 이민규, 이상준, 한만중, 김단, 류지아, 김혜령,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추신호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월남하여 갖은 고생 끝에 유기공장을 운영하고, 유기 마을을 만들어 방짜유기의 명맥을 잇는 데 힘써온 유기장명예 보유자 이봉주의 생애를 담은 오디오 다큐드라마.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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