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오디오북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김 금 화’.
제3화, “에라 만세 놀구나요”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철물이춤으로 미국에 가다 2>
#1. 1982년, 저녁,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 국제박람회장
(장대비가 오는 소리) (장구 연습하는 소리)
대사관 직원 // (성내는) 아이, 지금 뭐 하는 거야? 공항에서 돌아가라고 했잖소? 무당굿으로 나라 망신시키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조자용 // (항의) 아니, 대체 왜 이러는 거요? 당신들이 우릴 초청했잖소!
대사관 직원 // ‘철물이춤’이라고 하더니 굿하는 무당이 온 거잖아요!
조자용 // 굿하면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지요! 다 잘합니다!
대사관 직원 // 아니, 촌에서나 하는 굿을 미국 박람회에서 하겠다니!
명색이 한미 수교 행산데, 저렇게 꾀죄죄한 사람들을
어떻게 무대에 세웁니까?
조자용 // 공연 날인데 버스도 안 보내줘서
봉고차 빌려 장대빌 뚫고 왔어요.
(단호하게) 공연 안 하곤 절대 못 갑니다!
대사관 직원 // 지금 다 철거하고 있으니 맘대로 하시오!
50대 금화 //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맞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문화예술단을 초청했어요.
‘양주산대놀이’와 ‘시나위’, ‘철물이굿’팀이 갔지요.
(장대비 오는 소리)
조자용 // (공연팀에 외치는) 자자, 이제 우리 공연 시작합시다!
비가 많이 와도, 무대 다 걷어 가도,
우린 원래 땅에서 했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50대 김금화 // 일행의 눈빛은 하나같이 비장해 보였어요.
하지만 우리 ‘철물이굿’ 차례가 될 때쯤엔
관객들이 떠나기 시작했지요. 걱정이 컸습니다.
김금화 // (다짐) 야, 인제 우리가 쫓겨 가느냐 성공을 하느냐
둘 중 하나구나. 그래! 인정을 받으려면 열의가 없으면 안 되지.
조자용 // (관객에 크게 외치는) 이번엔 가장 신비스런 세계에 있는 분들을
어렵게 모셨습니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준비한 음식 골고루 나누시면 집안에 새 복이 들어옵니다!
여기 녹스빌과 한국의 신령님들을 모시고
한바탕 굿판을 벌여 봅시다!
(철물이굿)
김금화 육성 // “나가서 잠깐 상산맞이 보이고 춤을 추면서 거기서 옷을 훌훌 벗어 다 집어 던진 뒤에 작두 타는 거야. 거기서 타는 거야. 작두날 시퍼렇게 갈은 거 들고선 잠깐 작두 이런 데 우리 어르고 그러는 거야. 작두를 붙들라고 하고선 내 옷을 이렇게 섬둥 천을 뚝 자르는 거야.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반짝반짝해. 이렇게 쳐다 보니까 꽉 차 있는 거야 사람들이. 막 춤을 추면서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간 거야. 옷을 이 사람 입히고 저 사람 입히고 돌아가며 다 끌어올려, 무대로. 이 사람들 끌어올려. 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춤추고 막 이러고 뭐 이러고. 그냥 무대가 꽉 찬 거야. 콩나물이야 완전히.”
(박수 소리, 환호하는 소리)
조자용 // (기뻐서) 신모님, 고맙습니다. 우릴 구하셨어요!
김금화 // 나도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에요.
조자용 // (으시대며 외치는) 자자, 우리 공연단은 이제 숙소로 갑니다!
대사관 직원 // (태도 달라져 친절) 아이고, 가신다니요. 안 됩니다.
영사님이 공연 너무 좋았다고 갈빗집을 예약하셨으니
같이 가시지요. 좋은 걸 몰라보고 정말 죄송합니다.
김금화 // 모두 너그러히 용서했지요.
보름 예정으로 갔던 미국 공연은 3개월로 연장돼
여러 도시를 돌았고, 이후 유럽에까지 다녀왔습니다.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문화재 지정+ 어머니>
김금화 육성 // “이두현 교수님한테 “이건 문화재 안 될까요?”, “에이, 굿은 안 됩니다.” 굿이 어떻게 문화재 될 수 있냐고 그래서 포기하고 그다음에는 이제 탈춤에, 진오귀굿 하는 과정을 좀 가르쳐 달라 그래요. 그래서 그럼 진오귀굿 하는 걸 내가 하면 어떠냐. 그러니까 아, 그럼 좋다고 장용수 선생님이, 아 그건 좋지 김 선생이 와서 하면 정말 진짜 좋지. 그래서 거기서 미얄할미가 죽어서 진오귀굿 하는 걸 조금 이제 하고 또 봉산탈춤도 더러 가르쳐 주고. 그래서 그걸로 아마 문화재가 가능한가는 좀 기대를 했지만 굿으로는 생각 밖이었죠.”
#2. 1984년, 석관동 집
(찻잔 만지는 소리)
김금화 // 차 드시죠. 이두현 교수님, 하효길 교수님.
하효길 // 논문 쓰는 데 좀 더 협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금화 // 아유, 그럼요.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드리고 들려드리고 나눠드리지요.
하효길 // 오늘은 ‘서해안 풍어제’인 ’배연신굿’ 이야길 나눠볼까요?
굿하면서 뱃사람들과 즐거웠던 순간, 있으시죠?
김금화 // 많지요. 만신이 되고 열아홉부터 옹진에서 잘 불렸지만
그 후 인천으로 피난 가서도 목포니, 군산이니
배 부리는 곳으로 가서 굿을 했지요.
이두현 // 음... 아무래도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김금화 만신을 불렀겠죠?
김금화 // 그렇지요. 그래도 그중 제일 친근한 걸로 꼽자면
고향 부근인 덕적도, 강화도 사람들입네다.
배 타기 전에 굿을 워낙 자주 하니까 순서를 다 꿰고 있지요.
(찻잔 소리)
이두현 // 아이 그러니까 그렇게 꼬박 2박 3일 동안 배연신굿을 한 거지요?
김금화 // 아휴, 3일이 뭔가요? 그건 가장 짧은 거고, 길게는 3개월도 하면서 그분들과 울고 웃고 소리하고 그랬지요.
김금화 // 두 교수님은 절 가끔 찾아와서 논문을 도와달라고 했지만
사실 저한테도 정겨운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오랜 기간 이야기 나눈 그 모든 과정이 심사였더군요.
(전화벨 울리는 소리)
김금화 // 여보세요!
하효길 // 김금화 만신님, 저 하효길 교수입니다.
문화재 심사는 끝났고 이제 인정 발표가 날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김금화 // 1985년은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었으니까요.
어머니 // (기뻐서 울며) 아휴우, 내가 너 금화를 낳았으니께
니가 미국 다녀오고 문화재도 된 거지?
그러니 나 업고 동네 좀 다니자.
김금화 // (웃으며) 자, 업히세요.
어머니 // (소리 크게) 이것 좀 봐요. 아주마이들.
내가 우리 딸 잔등에 업혔어요. 딸이 문화재가 됐어요!
김금화 // 그렇게 좋아요?
어머니 // 아휴 그럼! 좋구말구. (내리며 좋아서) 나 이제 춤 좀 춰야겠다! 그 ‘만수대탁굿’ 때 허는 노래 좀 불러봐라!
(김금화의 ‘만수대탁굿’ 中 노래)
김금화 육성 // “이쪽에서는 인천이나 저기 강북, 남에서는 그냥 춤만 추는 거예요. 춤은 뭐 그 대주가 앞만 사는데 건강하고 편안하고 재수 있고 사업 잘되게, 애들도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그렇지. 거기에 뭐 사설이라든가 덕담 같은 걸 많이 못 했죠. 그게 이제는 옛날 거가 없어지고 사라지니까 되도록이면 그런 거를 안 잊어버리고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금화당과 보존회, 그리고 제자 교육 >
#5. 2009년, 인천,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존회
(보존회에서 제자들 연습하는 소리)
김금화 // (가르치는) 자, 날 보고 따라 하라!
몸을 일자로 딱 제대로 보기 좋게 하고 어깨도 딱 펴고 서라!
맴을 돌아서 우뚝 서지 말고
몸매는 단정하게 해야지 되는 거이야.
제자들 // 네! 선생님!
김금화 // 저는 후대에 우리 옛것이 이러했다는 걸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굿 문화를 전수하는 무속 체험장을 세웠지요.
2002년 강화도에 지은 ‘금화당’입니다.
그리고 인천에는 보존회를 열어 이 두 군데서 제자를 길렀어요.
제자1 // 선생님, 질문이 있어요.
황해도에선 만신이 왜 서서만 해야 되지요?
김금화 // 황해도선 만신이 장단치는 걸 먼저 배우면
못 불린다고 하는데, 그건 서서 해야 하기 때문이지.
장구는 앉아서 쳐야 하니까.
그래서 황해도선 상장구 할마이가 있어야 하는 게야.
제자2 // 아~ 배연신굿을 옛날엔 2박 3일 꼬박하다가
지금은 딱 하루만 하잖아요? 아쉬운 점은 없으세요?
김금화 // 왜~ 있지!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는 게 내 신조지만
축원과 덕담이 줄었고, 장단도 빨라졌고,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게 줄었지.
제자1 // 선생님, 이런 전통 굿 순서나 사설이
선생님이 쓰신 ‘무가집’에 다 실린 거지요?
김금화 // 음~ 그럼! 방아 찧는 데 사설, 대감 노는 데 장군거리
이런 거 다 없어지면 아 무슨 수로 굿을 하간?
다들 잘 읽어보고 외우라!
제자들 // 네!
제자2 // 선생님! 독일에서 안드레아라는 제자분한테서 전화 왔어요.
70대 금화 // 지금은 절 ‘엄마’라 부르는 ‘안드레아’와는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샤머니즘 학회에서 만났지요.
가장 먼저 찾아온 외국인 제자이고, 독일인이지만 제 신딸입니다.
#6. 2006년, 오스트리아, 샤머니즘 학회
안드레아 // (뛰어와서 인사)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에서 온 ‘안드레아’라고
합니다. 한국의 김금화 만신님 맞죠?
김금화 // (걱정되는) 김금화는 맞는데, 안드레아, 너 어디 안 좋은 데 있나?
(속말) 안드레아, 이 아이는 내림굿을 안 하면 안 되겄다. 신병이 크게 났어.
안드레아 // (떨면서, 목소리도 떨리는) 오빠가 신병이 왔는데 그만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그 병이 저한테 그대로 내려왔나 봐요.
선생님, 저 어쩌면 좋죠?
70대 금화 //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전 안드레아의 남편에게도
굿을 좀 서둘러 하면 좋겠다고 했지요.
겨울에 안드레아가 내림굿을 받으러 한국에 왔습니다.
안드레아 // (떨면서) 선생님, 제가 돈이 이거밖에 없어요.
김금화 // 아휴.. 돈이 뭐가 중요하간? 아픈 사람이 중허지.
아예 없어도 무조건 해줄 기야.
(내림굿 음악)
김금화 육성 // “인왕산에 가서 산맞이 하고 산기도를 하는데, “엄마, 엄마.” 그러더니 한국말을 여러 마디 하더라고. 이게 뭐야? 이러는 거예요. 하는데 그 외국에서 친구가, 외국 친구가 이렇게 해도 되냐니까. 자기가 잘못 관리했고 자기 길이 이 길이 아니면 그쪽 길이라도 가면 어떻겠냐. 가는 길을 우리가 막지는 않는다, 환영한다. 그러니까 걔가 얘기를 하는 거야.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정신 분열 있는 사람, 아픈 사람, 신병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 6명을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내림굿도 하고 비움굿을 하는데 내림한 사람들 내림하고 아프지 않고 좋다고 하고 또 찾아와서 인사도 하고 그러더라고.”
<신어미로서의 애틋함과 자부심>
#7. 2010년대, 금화당
김금화 // 조카이자 신딸 혜경아, 자고로 무당은 됨됨이가 제일 중요허다. 남의 덕을 잘 빌어주려면 내가 먼저 덕이 있어야지.
김혜경 // 아유, 또 그 말씀 하시네.
저도 고모처럼 제자들한테 맨날 그 얘기만 해요
김금화 // 혜경아, 나한테 내림굿 받은 거, 기억나네?
김혜경 // 그럼요. 생생하지요.
김금화 // 난 새 제자를 만나 내림굿을 할 때면
만세받이를 부르다 꼭 울고 말았다야.
김혜경 // 저도 신어머닐 닮았네요.
같이(읊는) // 불리러 가요. 외기러 가요. 닫힌 문을 열러 갈 제
나를 따라오너라. 험하고 먼 길이니라.
수없이 넘어지고 수없이 일어나거라
넘어지고 넘어지다 보면 마침내 네가 설 곳이 있느니라
70대 금화 // 교황의 진혼굿을 했던 로마에서도,
대동굿을 열었던 백두산에서도,
저는 늘 모두가 화합하기를 바랐지요.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
만신의 길을 그저 명 받아 걸어왔을 뿐입니다.
나레이션 //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도
복을 빌고 한을 풀어주던 만신, 김금화.
2019년, 이름처럼 비단꽃으로 다시 피어
소리로, 춤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 마무리 코너 –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김금화의 ‘진오귀굿’ 현장음)
나레이션 // 여러분은 지금 김금화 만신이 세월호 위령제에서 진오귀굿을 하는 현장음을 듣고 계십니다.
김금화 만신은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의 전통 굿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김금화 만신의 신딸,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전승교육사이자 보존회 이사장인 김혜경 만신의 이야기입니다.
김혜경 // 평생 무당으로서, 무속인으로서 고생도 많이 했고 우리 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많이 전파를 시켜서 알리기도 했고 교황청에도 갔었고 로마주립대에서 공연 행사를 했었고 또 미국에는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는 바람에 링컨센터에 가서 쌍둥이빌딩에 대한 영혼들을 달래는 굿도 했었고, 그러면서 국위선양을 하면서 많이 알리고 우리 문화를 전파를 시키고 그래서 유럽 쪽으로 가면 김금화, 서해안 풍어제, 한국의 굿 이러면 많이 알려져 있어요. 많이 알려져 있고 워크숍 같은 걸 하고 이래도 우리 방에만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 행위를 보고 또 음악 소리가 좋고 춤을 출 수 있고 춤을 춰서 한을 풀고, 원을 풀고 또 살을 푸는 거니까 그렇게 많이 저기를 했었죠.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김 금 화. 세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이서윤, 이소영, 전해리, 이민규, 한만중, 김단, 류지아,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조성도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무당으로서 핍박받고 천시받던 삶을 극복하고, 전세계에 전통 굿을 알리며 '굿'을 문화재의 반열에 올려놓은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김금화 보유자의 생애를 다룬 오디오 다큐드라마.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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